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수많은 징후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를 ‘하인리히 법칙’으로 설명한다. 하인리히 법칙은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1920년대 미국의 한 여행보험회사 관리자였던 허버트 W. 하인리히(Herbert W. Heinrich)는 7만5000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1 : 29 : 300 법칙을 주장했다. 큰 산업재해가 발생했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가 발생하고, 또 운 좋게 재난은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사건이 300번 발생한다는 것이다.
뇌졸중도 마찬가지다.
뇌졸중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가 손상되는 질환으로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위험신호를 보낸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외과 조병래 교수는 “뇌졸중은 초기 증상을 놓치지 않아야 대형사고를 막을 수 있다”며 “뇌졸중은 겨울철에 특히 위험성이 높아지는 만큼 뇌졸중의 위험신호를 제대로 읽고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겨울철엔 뇌졸중 위험 더 커져… 한해 60만 명씩 발생
겨울은 뇌졸중을 특히 조심해야 하는 계절이다. 몸이 갑작스레 움츠러들 듯 뇌혈관도 급격히 좁아지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에는 약을 복용해도 기온 변화로 평소보다 10㎜Hg 이상 최고 혈압이 높아질 수 있다.
흔히 중풍으로 많이 알려진 뇌졸중은 한 번 발병하면 심각한 신체장애를 입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과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로 구분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뇌졸중으로 병원을 찾은 인원은 60만7862명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2019년 61만3824명보다는 줄었지만, 2016년 57만3379명보다는 약 6%(3만4481명) 늘었다. 뇌졸중은 퇴행성 뇌혈관질환 중 하나로 나이가 들수록 환자가 증가한다. 전체 뇌졸중 환자 10명 중 8명은 60대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다.
뇌졸중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다. 흡연, 알코올, 서구식 식생활, 운동 부족 같은 잘못된 생활습관이 성인병을 부르고, 여기에 스트레스가 더해져 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뇌졸중 발병 위험을 높인다. 나이가 들면서 신체가 노화하면서 점차 약해진 뇌혈관도 영향을 준다. 이외에 비만, 나쁜 콜레스테롤이 많은 이상지질혈증도 뇌졸중 발병과 관련 있다.
뇌졸중의 대표적인 위험신호는 머리가 맑지 않은 멍한 두통이다. 이는 혈액공급이 덜 되면서 머리에 일시적으로 피가 부족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고개를 위로 쳐들 때 어지러운 것도 의심해 봐야 한다. 뒷골로 가는 혈관이 순간 찌그러지면서 피가 통하지 않는다는 신호일 수 있다. 한쪽 팔·다리가 약하게 저리면서 감각이 둔해지거나 말을 할 때 새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이런 증상을 일과성 뇌허혈발작이라고 부르는데, 뇌혈관이 일시적으로 막혔다가 다시 뚫린 것이다. 일과성 뇌허혈발작을 겪은 사람 중 5%는 한 달 내에, 1/3은 3년 내에 뇌졸중이 발생한다.
조병래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졸중은 고혈압이 있으면 그 위험성이 더 커진다”며 “고혈압 환자의 뇌혈관은 겨울 추위에 발생하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터질 수 있고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고 경고했다.
◇뇌졸중 골든타임 최대 4.5시간… 증상 발현 시 곧바로 병원 찾아야
뇌졸중이 발생하면 혈관이 막히거나 터진 뇌 부위에 따라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발음이 어눌하고 말을 잘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장애를 겪을 수 있다. 또 신체의 한쪽이 마비돼 한쪽 팔·다리를 움직이려고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거나 감각이 떨어진다.
심한 두통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를 하기도 한다. 시각장애가 발생해 한쪽 눈이 안 보이거나 물체가 겹쳐 보인다. 갑자기 어지럼증이 심해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걷고 손놀림이 자연스럽지 않을 수 있다.
뇌세포는 단 몇 분만 혈액공급이 되지 않아도 손상을 입는다. 한 번 죽은 뇌세포는 다시 살릴 수 없다. 뇌세포가 주변 혈관으로부터 산소와 영양분을 받으며 버틸 수 있는 시간, 즉 골든타임은 최대 3~4.5시간이다. 일단 뇌졸중이 발생하면 늦어도 4.5시간 안에 응급치료를 받아야 후유증과 사망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조병래 교수는 “아무리 의술이 발달하고 좋은 의료진과 첨단장비가 준비됐다 하더라도 뇌졸중 증상 발현 후 3~4.5시간이 지나면 뇌는 회복이 어렵다”며 “이상 증상을 느끼면 지체하지 말고 신속하게 병원에 가야 한다. 몸을 가누기 힘들 땐 119에 연락하거나 주변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빠른 대처가 최고 응급조치… 혈압 관리 중요
뇌졸중 치료법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뇌경색으로 막힌 뇌혈관을 뚫을 때 혈전(피떡)을 녹이는 용해제를 사용하는 ‘약물 재개통술’과 기구를 넣어 혈전을 제거하는 ‘기계적 재개통술’이다.
약물 재개통술은 뭉쳐 있는 혈전을 녹이는 혈전 용해제를 주입해 막힌 혈관에 다시 피가 돌도록 뚫어 준다. 하지만 뚫릴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고 약을 너무 많이 쓰면 자칫 혈관 파열로 뇌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기계적 재개통술은 이같은 약물 재개통술의 단점을 보완한 치료법이다.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에 아주 얇은 와이어를 관통시킨 후 그 와이어를 따라 가느다란 관을 삽입한다. 이후 관을 빼면 관 속에 있던 스텐트(그물망)가 쫙 펴지면서 혈전에 엉겨 붙는다. 이때 그물망을 제거하면 혈전도 함께 빠지기 때문에 부작용을 크게 줄이면서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최근에는 뇌혈관질환 중 50% 이상이 머리를 절개하지 않는 뇌혈관 내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다. 허벅지에 위치한 다리혈관으로 1㎜ 이하의 얇은 기기를 뇌까지 넣어 치료한다. 뇌혈관이 터졌다면 메꿔주고, 막힌 공간은 뚫어 준다. 뇌동맥류, 경동맥협착증, 뇌동정맥기형, 혈관성 뇌종양까지 총 6가지 뇌혈관질환에 적용할 수 있다.
조병래 교수는 “뇌수술이라면 지레 겁을 먹기 쉽지만 최근에는 머리를 열지 않고도 수술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며 “‘뇌는 시간이다(Brain is time)’라는 말이 있다. 뇌졸중은 빠른 시간만이 유일한 응급조치로, 증상 발생 후 반드시 3~4.5시간 이내에 병원을 찾아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1/12/22/20211222020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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